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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성장 멈추지 않게 … 공교육에서 ‘죽음’ 가르쳐야”
초등학생 대상 죽음교육 공청회

초등시기 80% 가까운 이 죽음 겪지만
아이들은 애도·사별에서 소외시켜 
남겨진 삶을 위해 ‘죽음교육’ 시급해
‘상실 교육’이라는 대체 용어 제안도

수정 2024-05-20 18:55등록 2024-05-20 16:39

지난 5일 ‘옥스퍼드 휴먼즈 코리아’와 ‘그데함’이 온라인에서 마련한 ‘한국 초등학생 대상 죽음 교육 1차 공청회’에서는 지영해 옥스퍼드 교수, 임경희 그데함 대표, 정현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등 270여명이 참석해 공교육에서 죽음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데함 제공
지난 5일 ‘옥스퍼드 휴먼즈 코리아’와 ‘그데함’이 온라인에서 마련한 ‘한국 초등학생 대상 죽음 교육 1차 공청회’에서는 지영해 옥스퍼드 교수, 임경희 그데함 대표, 정현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등 270여명이 참석해 공교육에서 죽음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데함 제공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가족들이 어린 자녀에게 몇년간 ‘아빠가 해외 출장 중’이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나중에 알게 된 자녀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이혼하고 따로 살던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가족들이 모두 그 사실을 숨기는 바람에 뒤늦게 알게 된 자녀가 가출을 하는 등 평생 방황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죽음에 대해 물어보면, ‘뭘 그런 걸 궁금해하냐’ ‘공부나 하라’고 하고, 어떤 경우는 자신의 부모 장례식에 참여하는 것조차 배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성인이 된 이후에까지 큰 문제가 됩니다.”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일 어린이를 ‘진짜 삶의 주인공’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특별한 공청회가 열렸다. 영국의 ‘옥스퍼드 휴먼즈’와 한국의 ‘그데함’이 온라인에서 마련한 ‘한국 초등학생 대상 죽음교육 1차 공청회’가 그것이다. 지영해 단장(옥스퍼드 동양학과 교수)과 조명진 프로그램 부장(더럼대학교 의료인문학연구소 연구원) 등이 이끌고 있는 ‘옥스퍼드 휴먼즈’는 죽음에 대한 학문적·영적 이해를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가 죽음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죽음과 관련한 각종 포럼과 강연회를 영국과 한국에서 열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 임경희 대표가 이끌고 있는 ‘그데함’은 ‘그림책으로 데쓰(죽음)를 함께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지영해 교수와 임경희 대표가 공동 진행한 이날 행사에는 ‘죽음학의 전도사’인 정현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등 의사와 교사, 학부모 등 270여명이 참석했다.

먼저 참석자들은 ‘초등학생들에게 왜 죽음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피력했다.

“병으로 어린 딸을 일찍 떠나보냈다”는 학부모 남승현씨는 “인생에서 한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공부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가 떠난 뒤 죽음을 공부하면서 죽음이라는 게 순서가 있는 게 아니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따라서 죽음 공부는 70∼80대가 아니라 어린 시기부터 성찰하고 공부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은주 웰다잉 강사는 “아이들의 80%가 초등학교 졸업 전에 조부모, 반려동물 등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조사가 있는데, 애도에서나 죽음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나 아이들은 별개의 존재로 소외시키고 있다”며 “아이들도 어른들 못지않게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는 죽음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현채 교수는 “아이들도 제대로 된 사별과 애도가 필요한데 얘기조차 해주지 않는데다 특히 부모의 죽음을 겪은 아이들에게 ‘착한 분이라서 하느님이 먼저 데려갔다’ ‘멀리 여행을 떠났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나도 착한데 나는 왜 안 데려가지?’ ‘왜 여행을 떠나면서 나에게 말도 안하고 떠났지?’ 등의 의문으로 아이들은 큰 혼란을 겪는다”며 “성교육도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가 아니라 정확하게 사실을 얘기해줘야 하듯이 죽음도 둘러대지 않고 정확한 실체를 얘기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송혜경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 중에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은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지 고민을 하면서 교사인 나조차 어떻게 위로를 하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해 직면하기보다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경학적 발달 측면에서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효준 신경외과 전문의는 “초등학생은 인격의 토대를 다지고 인격체가 완성되는 시기인데, 아이가 죽음이라는 고통을 접하고 이를 해소하지 못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성장하고 사회성을 함양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아이의 성장이 멈추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죽음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교육에서 죽음교육을 실시하는 데는 저항이 만만치 않다. 제주도의회에서는 ‘죽음에 관한 교육 지원 조례안’이 발의됐지만 2년간 심사 보류 중이다. 이를 발의한 송창권 제주도의회 의원은 “공교육에서 처음 성교육을 하려고 했을 때 부모와 교사들의 반대가 심했던 것처럼, 공교육에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져오는 것에 가장 반대하는 분들이 부모와 교사들 특히 교장 선생님들”이라며 “희망을 이야기해야 될 아이들에게 왜 죽음을 이야기하려고 하냐면서 크게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오랫동안 사별자 모임을 이끌어온 손영순 수녀는 “미국, 영국, 독일에서는 중·고등학생 때 호스피스 봉사도 보내고, 대만에서는 죽음에 대한 만화영화가 제작돼 유치원에서도 틀어준다”며 “한 사람의 인생에서 죽음 교육과 이별 교육은 필수적이고 남겨진 사람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시급한 문제인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안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는 ‘죽음교육’이라는 용어를 ‘상실교육’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두고도 의견이 오갔다.

김효준 전문의는 “‘죽음교육’이라는 용어 대신 ‘상실교육’이라는 표현으로 접근하고 개념을 잡아간다면, 이 교육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윤소영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성교육이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면, 죽음교육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것들은 너무나 기본적인 질문들인데 우리 교육이 얼마나 척박하면 죽음이라는 말 대신 상실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지 안타깝다”며 “죽음을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죽음교육’과 ‘상실교육’ 중 어떤 접근을 해야할지를 두고 즉석에서 이뤄진 설문조사에서는 51대 49로 ‘죽음교육’이 살짝 앞섰다.

약 2시간 동안 쉼없이 발언을 이어간 공청회는 “오늘 우리는 후대에 죽음을 사유하는 사회를 유산으로 남기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임경희 대표의 평가로 마무리됐다. 이들 단체들은 앞으로도 ‘죽음교육에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지’ 등을 주제로 계속 공청회를 마련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과정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음 공청회는 오는 6월2일 저녁 8시 온라인에서 열리며, 유튜브 ‘Oxford Humans’에서도 생중계된다. 또 6월16일 열리는 3차 공청회는 어린이 전용 공청회로서 공청 위원과 청중 모두가 어린이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