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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18]
[사설 속으로] 한겨레·중앙일보, ‘청년 고용률’ 사설 비교해보기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다음주 2월11일에는 ‘북한 상호비방 중단 제의’에 대한 논제가 실립니다.

[한겨레 사설] 청년 고용률 30%대, 특단 대책 마련해야

 

고용 사정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3년 고용률(15~64살 기준)은 64.2%를 기록했다. 2012년에 비해 0.2%포인트 상승한 것이지만 직전 3년의 연간 고용률 상승폭(0.4~0.5%포인트)에 비해 오히려 증가세가 꺾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첫해인 지난해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며 11조여원을 일자리 창출 관련 사업에 쏟아부었지만 별 신통한 효과를 보지 못한 셈이다. 좀더 실효성 있는 일자리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최악의 상황에 이른 청년 실업에 대해서는 특단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청년층(15~29살) 고용률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2년 이후 가장 낮은 39.7%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이후 청년 취업자가 다소 늘고 있기는 하지만 올해라고 크게 나아질 것 같진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 고용률이 최악인데도 한쪽에선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도 있는 만큼 마냥 경기가 나아지길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들 간의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는 맞춤형 대책을 마련하는 등 더욱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청년 고용 확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대간 고용률 격차 확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지난해 청년층 고용률이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진 반면 60살 이상 노령층 고용률은 전년보다 0.9%포인트 오른 38.4%를 기록했다. 전반적인 고령화 추세에 따른 정년 연장의 결과지만, 노후 생활이 불안정한 노인층이 경제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영향도 크다. 이에 따라 노인층이 청년층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게 아니냐는 세대간 일자리 논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몇몇 직종을 제외하고는 노인층과 청년층이 선호하는 일자리의 성격이 달라 경합관계라기보다는 보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세대간 일자리 상생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기업 내의 임금·인사체계 개편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고용률 못지않게 고용의 질도 중요하다.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각종 고용 확대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력단절 없는 일·가정 양립’을 내걸고 다양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육아나 가사 때문에 해오던 일을 중단한 여성들에게 다시 일자리를 갖게 하는 건 적극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쓸모없는 일자리만 늘리려고 해선 안 된다. 그런 일자리는 환영받지도 못할 뿐 아니라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중앙일보 사설] 청년실업 해소, ‘안녕들 한 사회’의 출발점

 

지난해 청년실업률이 3년 만에 다시 8%대로 진입했다고 한다.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모두 33만1000명으로 청년 실업률은 8.0%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률은 지난 2009년 8.1%에서 2012년 7.5%까지 떨어지다가 지난해 다시 0.5%포인트나 급등한 것이다. 특히 전체 실업률이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0.1%포인트 낮은 3.1%를 기록했고, 청년층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실업자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청년 실업의 증가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급등한 이유는 청년 구직자는 늘어난 반면 실제로 일자리를 얻은 취업자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청년층 취업자는 지난 2000년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데 급기야 지난해에는 379만3000명으로 1980년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고 말았다. 일하는 젊은이가 비율뿐만 아니라 절대 숫자까지 줄어든 것이다. 반면에 50, 60대 중노년층 취업자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전체 고용률이 소폭이나마 늘어나고 있는 이면에는 이처럼 ‘청년층 고용 감소-중장년층 취업 확대’라는 고용구조의 악화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유일한 수치목표로 제시한 고용률 70% 달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청년 실업이다. 이는 거꾸로 전체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청년 실업의 해소(청년 고용의 증대)가 핵심적 과제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청년들에게 번듯한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고는 고용률 제고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중노년층에게나 적합한 시간제·임시직 등 허드레 일자리만으로는 결코 고용률을 안정적으로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기업의 투자와 창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마침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투자와 창업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겠다고 했다. 제발 그 다짐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청년 실업자 통계는 우리 젊은이들이 왜 ‘안녕들 하지 못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논리 대 논리]
한겨레는 ‘일자리 상생’, 중앙은 ‘일자리 창출’에 방점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8.0%에 달한다. 지난해보다 무려 0.5%포인트나 급등한 것이다. 이는 단지 경제불황 탓만은 아니다. 전체 고용이 소폭 늘어났고 60살 이상의 노령층 고용률은 전년보다 0.9%포인트나 올랐다는 점에서 보면, 청년실업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불거진 문제라 하겠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이 점에는 한겨레와 중앙이 인식을 같이한다. 한겨레는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청년 일자리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면서도 “청년 고용률이 최악인데도 한쪽에선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도 있는 만큼”,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는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중앙 또한 “청년층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실업자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청년 실업의 증가는 더욱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적시하며, “중노년층에게나 적합한 시간제·임시직 등 허드레 일자리만으로는 결코 고용률을 안정적으로 높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따라서 두 사설은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처방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의견을 함께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처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양 사설의 입장이 확연하게 갈린다. 중앙이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는다면, 한겨레는 ‘일자리 상생’에 더 강조점을 두는 모양새다. 중앙은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기업의 투자와 창업’으로 생길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와 창업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반면 한겨레는 구직자와 구인 기업 사이의 불일치, 젊은층과 노인층 사이의 ‘세대간 일자리 상생’, ‘여성의 경력단절 없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안정적 일자리 창출’을 문제 해결의 키워드로 앞세운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중앙과 한겨레의 입장 차이는 1930년대 미국에서 벌어졌던 ‘8시간 대 6시간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후버 대통령은 ‘일자리 나누기’(work sharing) 운동을 펼쳤다. 경제공황 시기,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후버는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면 기업들이 그만큼 더 사람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노동자 개개인의 수입은 다소 줄어든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사회 전체가 누릴 혜택에 비하면 참아낼 만하다고 여겼다. 반면 후임자인 루스벨트 대통령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뉴딜 정책을 펼치며 적극적인 투자로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을 폈던 것이다. 루스벨트는 물건이 안 팔리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면 된다는 식으로 경제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후버의 일자리 나누기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에 대한 평가는 미국 경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뉴딜 정책은 미국 경제가 대공황을 탈출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일자리의 쏠림 현상은 더 심해졌다.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의 근무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더 많이 일할수록 소득이 늘어나는 까닭이다. 반면, 취업하지 못한 이들은 하는 일 없이 빈곤층으로 추락해 버렸다. 

지금도 이런 모습은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한다. 여기서 살아남은 이들의 노동 강도는 점점 강해진다. 반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자들은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다. 양쪽 다 삶의 질은 점점 낮아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자리 나누기’와 ‘기업의 투자와 창업을 위한 규제 완화’ 가운데 어느 쪽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현실은 흑백논리로 해결되지 않는다. 성장 없는 일자리 나누기는 가능하지 않다. 한겨레도 이 점을 분명히 짚고 있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가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늘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하지 않던가. 중앙 또한 “청년층 고용 감소-중장년층 취업 확대라는 고용구조 악화 현상”을 비중 있게 다룬다. 성장 없는 분배 없고, 합리적 분배 없는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두 사설 모두 공감하는 셈이다. 

하지만 정책 방향을 정할 때는 우선되는 가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자리 상생’이 바람직할까, ‘기업의 투자와 창업을 위한 규제 완화’가 효과적일까? 이달 말에는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나올 예정이다. 정부는 과연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까?

 


[키워드로 보는 사설]
청년실업 문제와 정부의 대책

 

청년실업 문제와 정부의 대책정부는 지난해 11조원의 예산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청년 고용률은 사상 처음으로 30%대로 주저앉았다. 30%대의 청년 고용률은 정부가 2017년까지 목표로 한 청년 고용률 목표치 47.7%에 한참 못 미친 수준이다. 기획재정부는 ‘2013년 청년 고용 동향과 특징’이라는 자료를 통해 청년 고용률이 낮은 이유를, ‘높은 대학진학률에 따른 취업 눈높이 상승’, ‘대기업·공기업 등 안정적 일자리 선호 심화’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청년 고용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청년 실업의 주요 원인은 ‘세대간 경합도가 높은 직군에서 고령화 위주로 취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정년 연장 등으로 고령층의 일자리는 유지된 반면, 고학력자가 많은 청년층에 걸맞은 노동 수요는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청년실업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은 추후에 어떤 정책이 펼칠지 짐작하게 한다. 이미 정부는 지난 12월 말에 발표된 201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먼저, ‘일-학습 병행제’를 추진하여 고등학교나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기업 현장에서 일하면서 학위 취득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한 국가직무능력표준 개발·보급을 통해 과도한 스펙 쌓기 경쟁을 억제한다는 전략을 펼친다고 한다. 나아가 1000억원 규모의 청년창업펀드를 만들고 전국에 오프라인 창조경제타운 조성, 재도전지원센터 운영 등을 통해 창업에 대한 도전의식을 높이고, 나라밖 일자리 발굴과 현지 정착 등 해외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케이무브(K-Move) 센터를 설치, 확대하기로 했다.

 

 


 

 

[추천 도서]

 

 

<케인즈&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케인즈&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박종현 지음, 김영사 펴냄 2008년
경제학자 케인즈는 경제는 국가가 주도권을 쥐고 계획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야 반복되는 공황을 이겨낼 수 있다. 반면 하이에크에 따르면 국가의 경제 계획은 국민을 ‘노예의 길’로 이끌 뿐이다. 그는 경제적 자유가 없다면 정치적 자유도 없다고 외쳤다. 경제를 정부가 이끌어야 하는지, 시장에 맡겨야 하는지는 늘 논란이 된다. 일자리 정책도 두 입장 사이에서 춤을 춘다.

 

 

<8시간 vs 6시간>
8시간 vs 6시간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 2011년
“8시간 vs 6시간”은 노동시간을 둘러싼 1930년대 미국 사회의 논쟁을 다룬다. 경제 공황기, 일자리 해법 

찾기는 ‘일자리 나누기’와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로 갈렸다. 켈로그 회사는 앞장서서 근무시간을 8시간에서6시간으로 줄였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읽다 보면 우리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