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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29] 2014.04.22
당대 지식 집대성…사회 개혁 꿈꾼 것일까요

[NIE 홈스쿨] 백과사전 변천사

국립국어원이 지난 1월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 ‘사랑’에 대한 네 번째 뜻풀이를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로 바꾼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습니다. 2012년 11월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가 성 소수자 차별을 만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사랑의 뜻풀이를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꾼 바 있지만, 이를 다시 되돌린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사전 뜻풀이를 바꾼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냐 반문할 수 있지만, 사전의 사회적 의미를 고려하면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사전은 당대의 언어 규범을 규정하는 동시에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전’이라 부르는 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국어사전, 영어사전과 같이 어휘의 뜻과 발음, 의미와 어원 등을 풀이한 사전(辭典)이 있고, 백과사전이나 전문어사전 등 어떤 사물이나 사항에 대해 전반적인 해설을 붙여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사전(事典)이 있습니다. 그 개념과 용어는 다르지만 이들 사전류는 인류 지식의 총합인 동시에 당대 사회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백과사전은 로마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 이전 그리스 시대에도 초보적인 형태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책, 예를 들어 플라톤의 조카인 스페우시푸스가 풀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연을 수학과 철학 등의 주제로 분류해 여러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지만, 이는 주로 철학자들의 사상과 사유를 옮겨 적은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실용적 지식을 중시했던 로마인들은 천문학, 지리학, 정치학, 동물학, 의학처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집대성하는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1세기 로마 시대 작가이자 과학자였던 플리니우스는 고대 로마의 자연과학을 한데 모은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박물지>를 펴냈습니다. 천문과 지리, 암석과 광물, 동식물과 농업, 의학 등의 내용을 담은 2000여권의 책을 참고해 37권으로 만들었습니다. 과학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족하고, 그리스 철학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다는 평가도 있지만,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이후 백과사전을 편찬할 때 반드시 참고하는 ‘전범’ 구실을 했습니다.

로마시대에 처음 시작됐지만
지금 같은 형태는 18세기 등장
볼테르 등 참여 21년 걸쳐 펴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 퍼뜨려
스스로 판단·선택하게 하자는 것
한국선 17세기 ‘지봉유설’이 최초
디지털 기술 발달로 책방식 쇠퇴
집단지성 활용한 온라인 시대로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백과사전이 본격 출간된 것은 18세기 계몽주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가장 대표적인 백과사전은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펴낸 <백과전서>입니다. 볼테르와 루소, 몽테스키외 등 당대의 저명한 계몽철학자 160여명이 참여해 총 7만1818개의 항목을 담은 본문 17권과 2885개의 삽화를 포함한 도판 11권의 백과전서를 21년에 걸쳐 펴냈습니다. 이성을 중시하며 경험적 관찰과 합리적 사고, 과학적 탐구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꿈꾼 이들이 바로 계몽주의 철학자입니다. 절대왕정과 종교가 앞세운 절대진리에 휘둘리지 않고 대중들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도록 이끄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던 만큼, 더 많은 이들에게 과학과 실용 기술, 새로운 사상을 전파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백과사전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른 한편 17세기부터 종교와 기도서 외에도 시와 철학, 정치학, 미술, 자연과학 등 다양한 종류의 지식을 담은 책이 발간되면서 백과사전을 편찬할 지적 토대가 갖춰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값비싼 책을 일일이 구입할 여력이 없는 독자 입장에서는 여러 종류의 책 내용을 발췌하여 한데 묶은 백과사전이 무척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백과전서는 당시의 권력자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백과전서>는 그리스도의 기적과 부활 등 성경의 역사적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귀족 계급이 누리는 특권을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1759년 디드로의 출판사에 출판 중지를 명령하고, 그의 책들을 압수하기도 했습니다. 백과사전 편찬이 구습과 편견을 버리고 낡고 병든 정치종교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백과사전의 효용에 주목하며 <백과전서> 편찬을 통해 지식을 집대성하고, 나아가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변화시키려 했던 이들을 ‘백과전서파’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서양의 ‘백과전서파’와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봉 이수광이 1614년 펴낸 <지봉유설>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수광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나라 살림은 피폐해졌음에도 권력자들은 붕당정치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조선 중기에 국부를 증진하고 민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에 힘썼습니다. 중국을 오가며 얻은 광범위한 지식과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지봉유설>은 그 결과물이었습니다. 당대의 학자들에게 ‘잡학’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조선 후기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을 중시했던 실학자들에게는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인 저술로 평가받았습니다. 이수광의 백과사전적인 저술과 실용적 학풍은 유형원의 <반계수록>과 이익의 <성호사설> 등으로 이어지다가 19세기 이규경이 펴낸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체계화되었습니다. 이규경은 철저한 고증 아래 역사과 천문, 지리와 종교, 문학과 음악, 농업과 화폐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1417항목으로 나눠 60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백과사전에도 변화가 일었습니다. 기존의 백과사전에 담긴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검색해 볼 수 있게 되었고, 네이버의 ‘지식인’처럼 여러 사람이 참여해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2001년 시작된 ‘위키피디아’는 집단지성을 활용해 수많은 표제어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온라인상에서 검토·수정해나가는 개방형 백과사전이기도 합니다. 백과사전을 편찬하는 책임편집자가 없음에도 폭넓고 깊이있는 정보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이들 정보를 신속하게 검색할 수 있을뿐더러 무료이기까지 합니다. 이제 누구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지식을 보태며 백과사전 집필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교과서 펼쳐보기 | 계몽사상이 확산되다

18세기에는 유럽 각국에서 과학 지식을 탐구하고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하려는 계몽사상이 널리 퍼졌다. 일찍이 칸트는 인간이 미신과 악습의 지배를 받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벗어나 밝은 지식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계몽’이라 정의하였다.

계몽사상가들은 이성을 통하여 얻은 지식으로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개혁을 통해 역사는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진보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성’과 ‘진보’야말로 계몽사상을 상징하는 낱말이었던 것이다.

계몽사상의 대표자는 볼테르였다. ‘뉴턴 과학’을 신봉한 그는 계몽군주의 개혁을 지지하였으며,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원리를 설파하였다. 한편,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과학적이고 유용한 지식들을 집대성한 <백과전서>의 출판을 주도하였다.

 

책으로 확장하기 | 지금, 우리에게 백과사전은 무엇인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장경식, 커뮤니케이션북스)은 1768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탄생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역사와 편찬원칙 등을 서술하면서 계몽주의 시대부터 현대까지 백과사전을 둘러싼 시대적 변화 양상까지 찬찬히 설명합니다.

저자는 인터넷의 발달로 종이로 된 백과사전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백과사전의 존재 이유도 함께 사라진 것이냐고 질문을 던지며 백과사전의 본질적 가치는 ‘종이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지식의 덩어리’라는 개념에 있다고 짚습니다. 지식의 총합인 백과사전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보편적 욕망은 오히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변이형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논제로 정리하기 | 지식과 문화, 정보와 기술의 사적 소유

2002년 연세대 정시 논술은 사회 변화에 따라 지식과 문화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귀속되는 현상을 제시하며, 이 문제가 오늘의 현실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 논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 기술이 곧 개인과 기업, 국가와 사회의 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정보격차에 따른 소외와 불평등 문제가 지식정보화 사회의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셈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비영리를 추구하는 지식정보화 생산자들을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보호하고 권장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위키피디아를 포함한 현대의 개방형 백과사전은 대중이 참여해 지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식공동체 모델로서 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