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한겨레 : 책과 함께한 인생, 그림책이 된 이야기

책과 함께한 인생, 그림책이 된 이야기

연재 ㅣ 고광윤의 영어 그림책 여행

‘The Library’

수정 2025-10-13 18:57등록 2025-10-13 17:02

고광윤 |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슬로우 미러클 영어 그림책 박물관 대표

삶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채워집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 책이 있다면, 삶은 한층 더 깊고 특별해질 것입니다. 책과 오롯이 함께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여정의 끝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엘리자베스는 마른 체형에 부끄럼이 많으며, 늘 안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였습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밖에 나가 놀거나 인형을 갖고 노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무척 사랑했지요. 학교에 다닐 때도,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도, 언제 어디서나 책 읽기를 즐겼고, 책 속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그렇게 늘 책과 함께하며 책을 사 모으다 보니 집안이 온통 책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거실 벽면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현관문까지 막아버릴 만큼. 그때 그녀는 깨닫습니다. 단 한 권의 책도 더 이상 들일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결심하지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책을 무엇보다 사랑했던 한 애서가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짧은 그림책 속에 한 사람의 감동적인 일대기가 담겨 있습니다. 작품 전체가 책의 숨결로 가득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책 수레를 끌며 책을 읽는 모습,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책에 몰두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책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책 읽기에 빠져본 적이 있다면, 다시금 그 마법 속에 푹 빠져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기차 여행 중 길을 잃고는 덜컥 집을 사서 정착하다니! 그녀에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책만 읽을 수 있으면 된다는 뜻일까요?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요!

한 편의 시처럼 라임을 맞추고, 첫 글자는 모두 대문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밝고 산뜻한 색감의 삽화가 글 이상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곳곳에 유머와 재치가 넘쳐납니다. 책을 읽으며 청소기를 돌리다가 벽에 부딪히는 장면, 달아나기에 바쁜 고양이들의 모습 등. 읽는 내내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애서가에 대한 궁극의 찬사라 할 만합니다. 책을 정말 사랑한다면, 자화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큰 격려를 얻고 뿌듯함도 느끼게 될 겁니다. 비슷한 친구가 있다면, 특히 그 친구가 여성이라면,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최고의 부부 작가 중 하나인 사라 스튜어트(Sarah Stewart)와 데이비드 스몰(David Small)의 합작품입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와 한집에 살며 함께 나이 들어가고, 언제 어디서나 책 읽기에 몰두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함께 그림책을 만들어가는 부부 작가의 모습과 겹쳐져 더욱 큰 울림을 줍니다. 평생을 바쳐 사랑한 소중한 것을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나눔과 무소유의 정신이 부럽습니다. 평범한 한 인간의 삶이 사회와 이웃에게 끼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에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이야기를 모두 읽고 책장을 덮으면 은은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잔잔한 음악과 커피 향 가득한 멋진 영어 그림책 박물관을 만들어 책 읽기의 즐거움과 감동을 나누고 싶은 소망이 더욱 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