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아동권리의 위기… 아이들의 선언에 응답하려면
아동·청소년 참여형 기후행동 모임 세이브더칠드런 어셈블 청소년 운영진 3명이 ‘미래세대를 위한 글로벌 아동기후권리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가뭄으로 식수를 구하러 먼 길을 걷고, 폭염과 집중호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다. 세계 여러 나라 아동들이 전한 기후위기는 건강과 교육,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의 문제였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6 세이브더칠드런 기후 행동 콘퍼런스’에서는 아동의 경험과 요구를 정책과 재원, 현장의 변화로 연결할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이 9월24일 ‘기후 행동의 날’을 앞두고 ‘아동의 목소리, 국가를 잇는 기후 행동’을 주제로 마련한 자리였다.
아동들의 목소리로 전하는 기후권리
이번 콘퍼런스는 아동의 경험과 요구를 듣는 데서 시작해, 이를 정책과 실천으로 연결할 방안을 찾는 순서로 열렸다. 오전 행사에서는 한국·네팔·일본·몽골·베트남·마다가스카르 아동들이 직접 겪은 기후위기와 아동 중심 기후행동에 관한 영상을 시청한 후,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청소년 참여형 기후행동 모임 세이브더칠드런 어셈블 청소년 운영진 3명이 ‘미래세대를 위한 글로벌 아동기후권리선언’을 낭독했다. 아동기후권리선언은 영상에 참여한 6개국 아동들의 경험과 제안을 모아 검토하고 동의한 공동선언이다. 홍수와 해안 침식, 사막화 등 위기 모습은 달랐지만, 아이들은 건강과 배움, 안전한 일상을 지킬 권리를 공동의 요구로 정리했다.
“우리는 모든 아동이 기후위기 속에서도 배우고, 놀고,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가 있음을 선언합니다.”
일곱 항목의 선언에는 학습과 놀이를 이어갈 환경, 심리적 지원과 지속적인 기후교육에 대한 요구가 담겼다. 정부와 기업, 학교, 국제사회에는 기후정책과 사업의 계획·결정·평가 전 과정에 아동의 의견을 반영하고 결과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기후취약국 아동을 위한 재원·기술·교육·재난대응 협력도 요구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박지혜 의원은 축사를 통해 해외 여러 국가에서 아동·청소년의 기후정책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아동·청소년의 목소리가 기후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행사 참석자들에게 미래세대의 권리 보장을 위한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서 진행된 ‘아동 중심 기후행동, 현장의 이야기를 잇다’ 토크콘서트에서는 ‘마이 포레스트 차일드’ ‘세이브더칠드런 어셈블’ ‘도전! 레드벨’ 참여 아동과 담당자들이 경험을 나눴다. 아동이 직접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제안하는 활동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려면, 지역사회와 정부·기업도 그 목소리에 응답하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아동 중심 기후행동, 현장의 이야기를 잇다’ 토크콘서트에서 ‘마이 포레스트 차일드’ ‘세이브더칠드런 어셈블’ ‘도전! 레드벨’ 참여 아동과 담당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불평등한 기후위기, 아동권리 실현할 조건
오후에 이어진 전문가 포럼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의 ‘기후위기와 국가 및 세대 간 구조적 불평등’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로 시작됐다. 윤 원장은 “누가 위기를 더 많이 만들었고, 누가 피해를 감당하며, 누가 대응을 결정하는지 질문하며 기후위기가 국가와 세대 간 불평등과 맞닿아 있음”을 설명했다. 같은 재난이라도 예측 기술과 주거, 의료·교육 체계, 복구 재정 등에 따라 피해가 달라지는 만큼 국가 간 불평등은 기후위기에 대응할 자원과 권한의 차이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세대 간 불평등도 이와 맞닿아 있다. 아동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영향을 오래 감당하고, 이를 바꾸는 결정에는 참여하기 어렵다. 윤 원장은 “미래세대의 권리는 미래에 가서 보호하면 되는 권리가 아니”라며 배출량과 누린 편익, 위험을 알고도 대응을 미뤘는지, 전환 능력이 있는지를 고려해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알버트 살라망카 스톡홀름환경연구소 아시아 사무소 선임연구위원은 ‘국가 간 기후 불평등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계’ 발표에서 참여와 권한의 차이를 짚었다. 국가 간 협상력과 전문 역량의 차이,작은 지역기관에 불리한 복잡한 재원 접근 요건, 약속 불이행의 책임을 묻고 피해를 구제할 통로의 한계가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그는 참여 기회를 넓히는 데서 나아가 아동과 기후취약국이 의사결정과 재원 배분의 결과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경 세이브더칠드런 인도적지원·기후위기대응1팀장은 글로벌 기후 대응 활동과 제언을 소개하며 “아동 참여는 단순한 의견 수렴이 아니라 실제 영향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아동의 권리와 참여를 제도화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기후 정책 수립 과정 내 아동 참여와 아동영향평가 제도화, ▲‘아동마커’(Child Marker) 도입과 아동 필수 서비스 투자 확대, ▲기업 ESG 전략 내 아동권리 통합, ▲아동 중심 기후투자의 효과 검증과 아동 민감 지표 개발, ▲아동의 목소리 반영을 위한 시민사회의 공동행동 등을 제안했다. 여기서 아동마커란 재원이 아동에게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투자되는지 추적하기 위한 체계를 말한다.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이 9월24일 ‘기후 행동의 날’을 앞두고 ‘아동의 목소리, 국가를 잇는 기후 행동’을 주제로 마련한 콘퍼런스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동 중심 기후 행동 위해 필요한 변화에 대한 고민
패널토론에서는 장병일 카이스트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초빙교수·그린아이디어랩 대표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정부, 국제기구, 학계, 기후테크, 시민사회, 언론 분야 전문가들이 각자 역할을 논의했다. 기후재원과 조기경보체계, 기업의 기후전략과 지역사회 등 다양한 영역을 아동권리라는 공통의 기준으로 살피는 자리였다.
오진웅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기후시민소통국장은 시민이 정책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참여하는 기후시민회의의 취지를 설명했다. 시민의 권고안에 정부 부처가 수용 여부와 이유, 이행계획을 답하도록 하는 방향을 제시하며, 미래세대의 목소리도 정부의 책임 있는 응답과 정책 실행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지 녹색기후기금(GCF) 독립평가국 지식경영 전문가는 아동·청소년의 필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기후재원 체계를 짚었다. 청년 기후 리더의 사업·재원 접근성을 높이고, 사회집단 간 연대를 강화하며, 지원 효과를 추적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체계를 갖추자는 제안이었다.
최하연 카이스트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교수는 아동의 구체적인 생활 환경과 경험을 연구에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기후정보·교육·보건·사회보호를 연결하는 일도 강조했다. 폭염경보를 받아도 학교에 냉방·식수·전력이 부족하면 대응은 제한된다. 어떤 체계가 있는지 확인하는 데서 나아가 실제로 아동의 건강 피해와 교육 중단을 줄였는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용상 이화여대 교수·레인버드지오 대표는 관측 정보가 부족한 지역에서 위성으로 위험을 파악하고 휴대전화로 경보를 전달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관측·예측 기술을 현장의 시민사회 조직과 연결하고, 성과도 경보 발령 자체보다 누구에게 도달해 어떤 행동으로 이어졌는지로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호자와 교사가 제때 판단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전달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은 2025년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의 ESG 보고서 분석 결과, 97개사가 아동을 언급했지만 기후전략과 아동권리를 연결한 내용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과 개발한 ESG 기후위기 대응 아동권리 지표는기업이 아동을 주요 이해관계자로 명시했는지, 기후전략 수립에 미래세대인 아동의 권리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지 등을 점검한다. 김 소장은 기업이 아동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소통하고 그 의견을 경영 전략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지로 클리프 대표·기자는 기후취약국과 아동을 피해자로만 다루는 보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대응할 역량을 갖추는 데 무엇이 부족한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히말라야 관측 인프라 취재 경험을 들며 현지 연구자와 지역사회의 위험을 해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주체로 조명할 필요성을 짚었다.
패널들의 발언에 이은 질의응답에서는 기후재원을 가장 취약한 아동에게 전달할 방법, 연구의 사각지대, 장애나 거주 지역에 따른 참여의 장벽을 줄일 방안 등을 놓고 논의를 이어갔다.
이날 콘퍼런스는 아동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나아가, 그 권리를 실제로 보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자리였다. 아동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고, 재원과 기술이 필요한 곳에 도달하며, 실제로 아동의 삶이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에 각 주체가 어떤 역할과 책임을 다 할지 구체화한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 중심 기후 대응이 국내외 주요 의제로 확산되도록 앞으로도 정부·국제기구·기업·학계·시민사회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이어갈 계획이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총장은 “아동의 목소리와 참여가 기후정책과 재원, 현장의 실천에 반영돼 아동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은하 객원기자,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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