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같은 재난을 겪었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준 두 곳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학교에 부임한 선생님이 겪은 일입니다. 어느 날 시험을 치를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옆 사 과 간격을 만들고 칸막이를 세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지요. 그런데 시험지를 받은 아이들이 서로 둥글게 모여 앉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너희들 무엇을 하는 거야?” 그러자 아이들이 “선생님,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머리를 맞대고 서로 도우라고 배웠거든요.”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개인의 능력과 재능을 키워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서로 돕고 협력하기보다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시험 시간이 아니어도 혹시나 옆 친구가 자기 노트나 작품을 보고 따라하는 건 아닌지 민감하게 반응하곤 합니다. 친구가 자기보다 더 잘해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이러다 보니 심지어 수 업정리노트 공개를 회장 선거의 공약으로 내걸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 돕는 방법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을까요? 지난 2003년 10월, 대 서양에서 발생한 대형 태풍이 캐나다 동쪽 끝에 있는 핼리팩스라는 도시를 강타한 적이 있습니다. 한 순간에 도시는 쑥대밭이 되어버렸습니다. 전기도 끊기고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자기만 살겠다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밖으로 나와 서로 이야기 나누고 위로와 격려의 안부 인사를 건넸습니다. 즉석에서 급식소를 만들고 노인과 아이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재난이 닥치자 새롭게 우정과 연대의 관계를 맺으며 문제를 해결 해 나갔습니다. “길거리 파티는 아니었지만 모두 동 시에 밖에 나와 있었어요.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서로를 보며 행복감을 느꼈죠.” 나중에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비슷한 재난이 2005년 8월 미국 남부 멕시코만 연 안 도시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났습니다. 초대형 태풍 카트리나가 들이닥쳐 제방이 무너져 도시의 80퍼센 트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한순간에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해버렸지요. 그 결과 사망자와 실종자가 무려 2500명 명에 이르렀고 재난을 피해 집을 떠난 사람은 무려 100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에 서는 핼리팩스와 달리 약탈과 폭력과 살인과 파괴 행위가 난무했습니다. 당시 많은 언론에서는 이것을 도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흑인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몰아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과장이자 헛소문이었습니다. 사실은 도시에 투입된 경찰이나 군인, 그리고 백인들이 조직한 단체가 흑인들을 범죄자로 몰아붙 이면서 살인과 약탈을 저지른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1977년 7월 밤 미국 뉴욕시에서 인근 발전소에 벼락이 떨어지는 바람에 전기가 끊기는 정전 사고 가 났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25시간 동안 뉴욕시 전역에 전기가 끊겼습니다. 그 암흑 속에서 밤새 뉴욕 시내 상점 1700여 곳이 약탈당했 고 곳곳에서 화재 사고가 났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경찰에 체포된 사람만 3000명이 넘었습니다.

어떤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일까?

도대체 위 두 곳의 모습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소개할 책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에서 저 자는 뭐라고 할까요. 저자는 다행히 미국과 같은 예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캐나다 핼 리팩스 마을 사람들처럼 재난이 일어났을 때 기꺼 이 낯선 타인에게 물과 음식과 구호 물품을 전해 주고, 위험한 곳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러 가고, 자기 집을 숙소로 제공하며 재건과 복구 활동에 자원봉 사자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공동체의 모습이지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책에 나온 바에 따르면 우 리나라는 흔히 선진국 모임이라 불리는 경제협력개 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공동체 지수가 33위라고 합니다. 공동체 지수란 공동체 생활로 얼마나 위안과 만족을 얻고 자기 정체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받았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공동체 지수가 낮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근대화 과정에 서 공동체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사람은 물론 산업과 돈, 권력, 문화 등이 도시로 집중되면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체의 토대였던 농촌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 와중에 인간관계가 형식적이 되고, 개인과 사 회의 연결고리가 약해져 버렸습니다. 더 많은 소유 와 소비가 지상 목표가 되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자 기 행복과 사적인 이익, 곧 개인의 문제에만 몰두하 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개 인의 시대’가 활짝 열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살벌하고 냉혹한 자본의 시대였습니다. 결국 참 된 개인의 삶도 없고 공동체도 무너져버린 것입니 다.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 독거노인의 급증, 고독사 등이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란 흔히 생각하는 옛 마을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전통사회 공동체에도 긍정적인 장점과 미덕은 있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신분 제도 하에서 억압과 차별이 벌어졌고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을 꽃피우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마을과 마 을공동체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마을공동체는 사람들이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고서 살아가는 곳입니다. 구성원들이 공동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공동의 목적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함께 의도적으 로 만들어 가는 것이 마을 공동체인 것이지요.

책에서는 대표적인 마을공동체로 1994년 시작한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과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 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삼각산 재미난 마을’을 소개 하고 있습니다. 둘 다 공동육아 협동조합으로 시작 하여 대안학교도 만들어 운영하고, 나중에는 사회 적 기업과 지역 문화 활동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작은 도서관도 만들고 밴드와 극단도 만들었습니다. 교육, 생활, 문화 공동체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밖에 이미 1958년에 문을 열어 마을 공동체의 모델이 된 ‘풀무학교’를 비롯하여 에너지자립을 실천하고 있는 서울 동작구의 ‘성대골 마을학교’와 전북 부안의 ‘등 용마을’등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을공동체에 이어 요즘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 는 협동조합도 새로운 공동체 운동입니다.  협동조합 운동은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해 온 자본주의 문 제점에 맞서 주로 일자리 창출과 빈곤 해결, 환경 보호 등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협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10억 명으 로 전체 지구 인구 중에 14퍼센트에 해당한다고 합 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과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냐, 캐나다 퀘벡시, 인도의 리자트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이 있는데, 청소년들이 주 축이 되어 학교 매점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것과 해결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공동체에 문제가 없을 리 없습니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협동조합 역시 난관이 많습니다. 그래도 세상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유력한 길은 공동체라는 것, 여러 가지 문제와 한계가 있지만 소통과 연대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독서교육전문가, (주)리딩웰 대표,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