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술을 나누어야 하는가?




적정기술

추운 나라 몽골에 보낸 선물

지세이버(G-Savor), 슈퍼 머니메이커 펌프(Super Moneymaker Pump), 큐드럼(Q Drum).

모두 제품 이름인데 일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들이지요. 이 가운데 지세이버는 일종의 난방기구로 몽골의 천막 주택인 ‘게르’에서 요긴하게 쓰고 있습니다. 몽골은 1년 중 8개월이 영하 20~40도로 매우 추운 나라입니다. 몽골은 최근 사막화와 물 부족 심화로 일자리를 찾아 수도 울란바토르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도시 인구가 4년 사이 5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집을 마련하지 못해 도시 외곽의 판자촌에서 물과 전기가 부족한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이른바 환경 난민이지요.

게르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걱정은 추운 겨울을 나는 일입니다. 주로 석탄 난로에 의지해 겨울을 버티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소득의 70퍼센트를 난방비로 사용합니다. 그러니 먹고 사는 일보다 겨울을 무사히 보내는 게 우선입니다. 기존의 난로는 열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한밤중에도 중간에 꺼지는 불편함이 있었어요. 게다가 석탄 난로에서 나오는 매연이 대기를 심각하게 오염시켰습니다. 몽골 정부 통계에 따르면 몽골인의 사망 원인 중에 호흡기 질환이 5위에 해당할 정도로 대기오염이 심각했습니다.

게르 안도 매우 탁합니다. 열손실을 막으려고 환기를 잘 안하는데다 석탄 난로에서 나오는 가스가 게르 안의 공기를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어린이들이 호흡기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예가 많다고 합니다.

지세이버는 바로 이런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고안된 제품입니다. 우리나라 온돌 원리를 이용해 난로의 열효율을 높인 제품입니다. 기존의 난로에 부착하여 사용하는 난방기구로 오랫동안 열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연료비를 45퍼센트 가까이 절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장점은 공기 중에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현저히 적어서 호흡기 질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이렇듯 연료비를 절약해 가계 부담을 줄여주고 대기 오염도 줄인 지세이버 제품은 우리나라 엔지오 단체 굿네이버스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것입니다. 굿네이버스는 2011년 몽골 현지에 사회적 기업인 '굿셰어링(Good Sharing)'도 설립했습니다. 생산, 유통, 판매를 맡은 직원 56명은 모두 현지 직원들입니다. 새로운 일자리까지 제공한 것이지요.

적정기술은 손잡아 주는 착한 기술

<소녀 적정기술을 탐하다>의 저자는 놀랍게도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학교에 강의하러 온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적정기술에 반해버렸다고 합니다. 그날 저자가 처음으로 본 적정기술 제품은 ‘큐 드럼’이었습니다. 영어 알파벳 Q자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큐 드럼인데, 용도는 물통입니다. 아프리카 같이 물이 귀한 지역의 아이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와야 합니다. 아이들은 물통을 머리에 이거나 들어서 운반하는데, 너무 힘들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바닥에 돌이 많이 깔려 있어서 위험하지요. 그래서 무거운 물통을 편하게 운반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것입니다. 물통 가운데 난 구멍에 줄을 넣고 그 줄을 잡아 물통을 끌면서 오면 훨씬 덜 힘듭니다. 튼튼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바닥에도 끄떡없습니다.

슈퍼 머니메이커 펌프도 적정기술 제품입니다. 아프리카와 필리핀 등 채소 재배 농장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지하수를 퍼 올려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 한 물 공급 장치입니다. 그런데 머니메이커라고 불리는 이유는 뭘까요? 원래 지하수를 퍼 올리려면 전기 펌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계에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이 더 많지요. 슈퍼 머니메이커 펌프는 바로 그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입니다. 이 펌프의 유일한 동력원은 발이랍니다. 자전거를 타듯 페달을 밟아 펌프를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이 펌프 하나가 사용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펌프가 없을 때보다 더 빨리 더 넓은 지역에, 더 적은 돈을 들여 물을 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기계를 고안해 낸 킥스타트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3500세대가 이 펌프를 사용했고 농장수익도 약 10배가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적정기술을 저자는 손잡아 주는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해 이웃을 위한 멋진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위에서 소개한 지세이버나 큐드럼처럼 현지의 사정에 맞게 만들어서 쓰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발한 기술이라도 현지 사정에 맞지 않거나 사용법을 잘 모르면 오히려 폐를 끼치게 됩니다.

예전에는 국가 간의 원조를 생각하면 무조건 돈과 관련하여 생각했습니다. 도로, 항만 등 돈을 투자한 기자재를 기부하는 방식이었지요. 또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개발도 상국 사람들 중에는 적정기술을 부자나라가 가난한 하나에게 적선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적정기술은 이웃 간에 기술을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지역문화 이해하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지역의 종교, 혼인, 음식, 의복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적정’한 기술을 고안해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현지의 기후와 날씨를 살펴서 현지에서 나오는 재료를 이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기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적정기술이 가져올 삶의 변화에 대해 질문해야

2004년 말 남아시아에서 일어난 지진해일로 14만명의 목숨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 태평양에서는 지진해일 경보 시스템이 이미 40년 전부터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술 덕분에 미국 하와이에서는 지진해일을 미리 감지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가난한 나라들은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제때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진해일로 피해를 입은 나라에 하루 전에라도 경보가 전달되었다면 아까운 목숨들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자 나라였다면 달랐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술이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기술은 제일 긴급한 곳에, 가장 힘든 곳에 제공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적정기술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신념이고 가치관입니다. 저자에게 적정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주었던 포항공대 장수영 교수는 적정기술인은 문제 해결사라고 말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원인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적정한 해결책을 창조하는 일이니까요.

특히 공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제품 설계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은 어떤 의미를 지니지?’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삶의 변화를 겪게 될까?’ ‘이 물건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계층은 안 생길까?’ ‘누가 누구를 통제하게 되지는 않을까?’ ‘누구에게나 고귀한 가치인 자주권에 어떤 손상이 가지 않을까?’ ‘사회적으로 평등, 민주화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등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도 역시 강하게 외칩니다. “적정기술은 기술과 디자인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다양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이 되어 주는 기술입니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세계 디자이너의 95퍼센트는 구매력 있는 상위 10퍼센트의 소비자들만을 위해 모든 디자인 활동을 합니다. 이제는 소외된 9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할 때입니다.”

독서교육전문가, (주)리딩웰 대표,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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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근육 키우기 1
저자는 직접 적정기술 아이디어 제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길 찾기 어플리케이션과 지체장애인 친구를 위한 신발 깔창이 그것입니다. 책을 읽은 후 떠오른 적정기술 제품있으면 소개해 보세요. 또는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모기를 퇴치하기 위한 가장 적정한 기술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도움말 1
말라리아를 이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모기를 죽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합니다. 살충제를 살포해도 모기에게 내성이 생겨 소용이 없다는 게 밝혀졌어요. 그래서 모기를 죽이는 것보다 모기를 피하는 게 더 해결책이라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모기장이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쑥으로 모깃불을 피워 모기를 쫓아내기도 했지요. 지세이버가 우리나라 온돌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들었듯이 모기장이나 쑥을 이용한 적정기술 제품을 생각해 봐도 좋을 것입니다.
생각 근육 키우기 2
다음은 가난한 나라를 위해 구호활동과 연구를 하고 있는 에르네스토 시롤리가 테드(TED)에서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입 다물고 그냥 들어주세요.’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강연 내용을 읽고 <소녀, 적정기술을 탐하다>와 공통점을 찾아보고 가난한 나라를 도울 때 가져야 할 자세와 개선할 점을 말해 보세요.

저는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잠비아, 케냐, 코트디부아르, 알제리, 소말리아에서 일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기술 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우리의 첫 프로젝트는 이탈리아인이 잠비아 인에게 농사를 가르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비아 남부에 있는 주민들에게 이탈리아의 토마토와 애호박을 재배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물론 주민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재배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돈을 지급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가끔 재배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나타났거든요. 저희는 비옥한 땅을 지닌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왜 농사를 짓지 않는지 이유도 묻지도 않은 채 그냥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잠비아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해방해야 할 정확한 때에 저희를 이곳으로 보내주셔서.”라고요. 물론 아프리카에서는 모든 것이 정말 잘 자랐습니다. 엄청나게 큰 토마토가 열리곤 했어요. 저희는 그래서 “농사가 이렇게 쉬워요.”라고 그들에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토마토가 완전히 익어 빨개졌을 때 강을 건너온 하마 200마리가 그 많은 토마토를 하룻밤 새에 모조리 먹어 치웠습니다. “아니, 어떻게 하마가 그렇게 그걸 다 먹어 치울 수 있지요?”하고 우리가 말하자, 그들은 “그래서 우리가 농사를 안 짓는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도움말 2
에르네스토 시롤리는 이 연설에서 여성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가 쓴 <죽은 원조>를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서양인들이 지난 50년간 아프리카 대륙에 엄청난 금액을 원조했는데, 순박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얼마나 엉터리 짓을 했는지를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쓴 에른스트 슈마허는 “경제개발을 하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만약 사람들이 도움을 원하지 않을 때는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원조의 첫 번째 원칙은 바로 ‘존중’이라고 말합니다.
친구의 글
끝없는 행복, 적정기술 적정기술. 정말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모르는 단어이다. 일단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적정기술이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도움의 기술이다. 더 정확히 파고들면 ‘기술과 디자인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다양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이 되어주는 기술’이 적정 기술이다. 처음 이 책을 추천 받았을 때 ‘엥? 적정기술? 처음 들어보는데?’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지은이를 살펴보니 열일곱 살 언니가 쓴 책이란다.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아무래도 적정기술의 개념도 모르고 이 책을 읽기가 꺼림칙해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동영상을 먼저 보았다. 동영상에는 지은이가 여러 적정기술 봉사단에 들어가고, 몽골에 가서 지세이버의 체험 장을 본 경험담을 말하고 있었다. 또 적정기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교수님들과 메일을 주고 받은 이야기, 감각장애를 가진 친구를 위해 만든 깔창작품,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진동 케이스 작품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와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여고생 언니가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부럽고 본받고 싶었다. 사실 나도 내 꿈 “반려 동물 복지 전문가”를 위해 열심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노인 복지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동물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읽고, 반려동물 관련 영화도 여러 편 보는 등등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물론 저자 언니처럼 외국으로 나가거나 교수님을 만나는 노력은 아니지만 정성이 담긴 마음으로 달리고 있다. 그런데 ‘적정기술’에서 기술을 빼고 다른 말을 넣어도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몽골의 아이들에게 신나는 음악 수업을 해주면 적정음악이고, 가난한 도시의 사람들에게 천연 재료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도시락을 만들어주면 그것 또한 적정요리 아닐까? 너도 나도 행복한 그 무엇이 바로 ‘적정OO’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 생각에 적정기술은 앞으로도 더 많이 발전할 것이고, 적정기술이 발전할수록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더욱 행복해 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적정기술이 끝없는 행복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임채원, 역삼중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