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고집해선 안 되는 이유



살길을 찾아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간 난민의 수가 24만명입니다. 이 가운데 지중해를 건너다 숨진 난민은 3000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정원초과에 무리한 승선이 문제인 것이지요. 주로 시리아와 리비아, 이라크 등 내전을 겪거나 생존이 불안한 나라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향합니다. 여기에 최근 유럽에서 일어난 수차례의 테러가 이민자 가정의 출신이 일으킨 것으로 드러나면서 난민에 대한 시선이 동정심에서 증오심과 공포심으로 바뀌어가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지난 7월28일“독일은 난민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며 난민포용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지요. 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우리의 열린 마음과 의지를 약화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은 그동안 난민에 대해 허용적이었지만 최근 들어 테러가 빈번해지면서 일부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관대한 난민 정책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난민이나 이민자를 몰아내자고 외치는 신나치주의자가 득세할 거라는 우려도 있고요. 실제로 지난 2011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테러가 일어나 76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범인은 극우 민족주의자였습니다. 당시 서른 두 살의 백인 남성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빅은 다문화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노르웨이 집권 정당 노동당의 이민 정책에 앙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해외 이주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그들 대다수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노르웨이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여겼고, 과거 독일의 나치가 추구했던 인종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알려졌지요. 그런데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에 동영상 메시지를 남기면서 대한민국을 언급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그 동영상에서 대한민국이 “민족주의와 가부장제를 바람직하게 운영하고 있는 모범적인 국가”라고 칭찬했어요. 엄청난 살인을 저지른 테러리스트가 어쩌다 우리나라를 추켜세우게 되었을까요?

단일민족 순혈주의, 기득권의 패거리 문화로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는 다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현실을 심층적으로 파헤치고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에스비에스 스페셜 제작팀이 2006년과 2011년 두 번에 걸쳐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이주해 온 이주 노동자와 귀화한 외국인, 다문화가정의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고 그들의 사는 모습과 아픔, 희망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다문화에 대한 태도는 복잡합니다. 일단 이주 외국인에 대한 시각도 피부색에 따라 다릅니다. 제작팀이 실행한 실험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인, 백인에게는 넘칠 정도로 친절하지만 중국 동포나 중국인,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라기보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무시하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런 태도가 조선시대 ‘사대주의’와 같다고 비판합니다. 사대주의는 중국과 같은 큰 나라를 무조건 섬기고 받들던 사고방식이지요.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므로 다른 민족과 섞이는 건 싫다”는 생각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단일민족사관’ 혹은 ‘순혈주의 사고’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일민족으로 한 겨레, 한 핏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이지요.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외국인이나 다른 민족은 결코 우리 안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불순한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손님으로는 환영하지만 가족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지요.

순혈주의는 한 마디로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일정한 영역을 구축하고 뭉쳐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근본적으로 나와 다른 것은 나쁜 것, 또는 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지요. 그런데 이런 순혈주의가 기득권을 획득한 무리가 타인을 배격하는 의식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거론되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이 바로 순혈주의에서 비롯된 패거리 문화의 악습들인 것이지요.

원래 단일민족사관이 민족의 자주성을 강화하고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민족 간 분열과 발전을 가로막는 도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족을 내세운 이런 순혈주의 사고가 오히려 일부 권력자들의 기득권 유지와 이익을 위한 정치적 구호로 이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단일민족 순혈주의를 지킨다면서 같은 민족인 새터민과 중국 동포, 구 소련 지역의 동포(고려인)를 차별하는 것이 바로 이를 입증하고 있지요.

단일민족 순혈주의 사고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이 책에서 역사와 고고학적 지식을 통해 설득력있게 알려줍니다. 여러 취재에 따르면 한반도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동안 발굴된 여러 인골들을 분석한 결과 드러난 것이지요. 또 우리민족은 고대부터 이민족에 대해 관대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종족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또 우리의 시조가 단군이라는 신화 역시 보편적인 역사가 아니고 일부 백성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외침을 당했을 때, 몽골 침략이나 일제강점기에 고대사 연구가 부각되면서 단군신화가 두드러졌다는 것입니다. 단군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외부 세력에 맞서 백성을 결속시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곧 한국인

이 책은 다문화사회를 걱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 불법체류자들이 노동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내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주장도 일부 타당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법체류자의 범죄 증가도 문제이지요. 국가는 자국민의 권익을 우선으로 해야 하고, 외국인을 보호한다면서 오히려 내국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문화정책에 의해 역차별과 소외감을 느끼는 내국인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국인을 우선시하는 원칙이 외국인을 차별하고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르며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강한 주장입니다. 또 지금 유럽이 겪고 있는 이민자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도 앞으로 인종 간 종교 간 분쟁이 커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다문화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만, 이 역시 적극적인 수용과 미래지향적 사고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모두 단군을 시조로 한 단일민족임을 자랑하고 싶다면 먼저 ‘홍익인간’의 가치를 더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공동체정신을 살려,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즐기며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들은 이렇게 묻고 답합니다. “누가 한국인입니까?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다. 한국사회에 봉사하고 한국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다.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했던 ‘민족’이라는 마지막 조건을 버려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민족을 고집하는 순간 수많은 한국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독서교육전문가, (주)리딩웰 대표,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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