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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2일
읽기는 혼자 서고 걷고 뛸 수 있게 하는 힘

열쇳말-자유

<잠수복과 나비>장 도미니크 보비 지음, 양영란 옮김, 동문선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돌배게

 

 

십대의 몸은 힘이 넘친다. 미나리처럼 쑥쑥 자라고 자란다. 자고 일어나면 뭔가 달라진다. 복도에서 아이들은 뛰어다닌다. 걷지 않는 것은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단을 맞아도 금방 다시 웃으며 펄쩍펄쩍 뛰는 것은 정말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수철을 단 듯 덤벙거리는 몸과 달리 이들의 마음은 그렇게 활개치지 못한다. 미래 어떤 시점에서부터 보장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가능성에 현재를 저당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나비의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지만, 몸은 노란 구속복에 갇힌 장 도미니크 보비는 이런 십대의 모습과 닮았다. 
<잠수복과 나비>는 전 <엘르>(프랑스 패션 잡지)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의 이야기다. 세계적인 패션잡지의 편집장으로 남부럽지 않은 명성을 누리던 그는 급작스런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는다. 기적처럼 살아나기는 했지만, 오로지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듣고 보고 냄새 맡고 생각할 수 있는 상태, 의학 용어로는 로크트인 신드롬(locked-in syndrome)이라 했다. 
의사소통은 많이 사용되는 순서대로 다시 배열된 알파벳표를 이용했다. 상대방이 알파벳표를 보여주며 차례로 알파벳을 짚어간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박이고, 한 글자씩 모아 단어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루에 반쪽 분량으로 15개월 동안 20만번 이상 눈을 깜박여 이 책을 썼다. 
역설적으로, 몸이 닫히고 나서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숟가락을 들고, 입으로 음식을 가져가 씹던 경험이 반복되는 기적이었음을 깨닫는다. 몸을 씻고, 모기를 쫓고, 눈물을 닦는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가 아쉽고 그리웠다. 문병 온 25년 지기 친구는 사고 이후의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알파벳표로 어설프게 소통을 하는 대신 바닷가에 데려다 달라고 요청한다. 
친구들과 함께 베르크 바닷가에 간 건 해수욕장 끝 가건물에서 풍기는 감자튀김 냄새를 맡기 위해서였다. 질리도록 느끼한 기름 냄새에 함께 간 친구들은 코를 막는다. 그는 반대로 코를 벌름거린다. 아마 감격해서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삼켰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풍요로웠을 때 아무것도 아니던 것들은 그러한 낭비가 사라진 지점에서 이처럼 제 삭신을 드러낸다. 
오직 감각과 사유만이 허락된 채 육체의 자유를 잃은 장 도미니크 보비와 대조되는 듯 보이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다. 둘 모두 급작스레 자유를 놓쳐버렸고, 머지않아 죽을 지경에 놓여 있었던 사람이다. 
프리모 레비는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다 1943년 이탈리아 민병대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 1938년 인종법 발표 이후 파시스트들의 반유대주의가 창궐할 때였다. 프리모 레비는 체포되기 2년 전 토리노대학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역사의 파동을 겪지 않았다면 화학계에 한 획을 그을 수도 있었던 과학자였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적은 회고록이다. 비록 입으로 먹을 수는 없으나, 현대 의학의 힘과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와 달리 프리모 레비는 그 누구의 조력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전략으로 먹고 입을 것을 구했다. 수용소에서는 몇 가지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만 했다. 죽통의 위쪽보다 아래쪽 죽이 좀더 건더기가 많다거나, 수용자에게 지급되는 줄무늬 옷으로 막을 수 없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저고리 안에 종이를 넣는 등의 생존 기술이다. 
죽음이 유예된 상태로 격리된 공간에서 낮과 밤은 경계도 없이 지나갔다.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선잠을 청하고 어설픈 꿈을 꾸다 보면 새벽이 되고, 간밤의 먼지를 털듯 이불을 털며 일어나 작업장으로 갔다. 그런데 생각할 힘조차도 줄여가며 생을 연장하던 순간에 프리모 레비는 단테의 <신곡>을 떠올린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잠수복과 나비>의 주인공 또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등장인물을 떠올리며 자신의 처지를 투사했다. 읽고 기억하지 않았다면 이 두 사람 모두 극한 지점에서 자신이 판단력과 감수성을 지닌 인간임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는 읽기에서 비롯한다. 
몇 해 전 중고생을 대상으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고등학생의 답변 1위는 “잠을 실컷 자 보는 것”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그 결과를 보며 공감했다. 이런 중에 책 읽기를 권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십대의 읽기는 혼자 서고 걷고 뛸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믿기에 감히 그들의 피로와 고난을 끌어안으며 이 두 권의 책을 권한다. 잠수복에 갇혀 있을지라도 그 어떤 것으로도 가둘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한 인간으로 자신을 다시 보라는 의미에서다. 그 어떤 결핍도 한 인간을 완전히 절망에 빠뜨리지는 못한다. 또 사람은 역설적으로 자유가 줄어든 바로 그 지점에서 자유를 누리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자.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여러분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기를, 진심 빌어본다. 
난이도 수준 중2~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