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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77]
더 깊은 ‘시민 철학’ 꿈꾸는 전기가오리


출판사 '전기가오리' 운영자 신우승씨





트위터 공부 모임에서 출발한
자력갱생 서양철학 공부 공동체
온라인 방송하고 작은 책 내며
더 깊은 ‘시민 철학’ 꿈꿔



‘뭐야, 이렇게 작은 책을 내는 출판사도 있네?’ 50여쪽 도 안 되는 얇은 책들. 훑어보니 주로 서양철학 분야 의 딱딱한 논문 번역서다. ‘전기가오리’라는 출판사 이름도 범상치 않다.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충격을 받은 메논이 “전 기가오리에 쏘인 것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출판사 누리집에 들어가보니, 정체성이 생각보다 고차원적 이다. “서양철학을 함께 공부하고, 관련 문헌을 번역 출판하며, 출판물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란다.

7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전기가오리(http://www.philo-electro-ray.org)의 ‘운영자’ 신우 승(38)씨를 만났다. 생계와 무관하게 서양철학을 공 부한다는 신씨는 “앞으로 할 일들이 더 많다”며 청산 유수로 전기가오리의 청사진을 그려냈다.

전기가오리의 시작은 4년 전 작은 공부모임으로 거 슬러 올라간다. “제가 끈기가 없어서 텍스트를 끝까 지 못 읽었어요. 그래서 트위터를 통해 제 방에서 만 나 정기적으로 텍스트를 함께 읽을 사람을 구했죠.” ‘트위터 동학’들은 점점 늘어났고, 관심 주제에 따라 공부모임도 8개까지 불어났다.

‘전기가오리’의 트위터. 전기가오리의 운영자 신우 승씨는 “주로 트위터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고, 가르침을 주실 좋은 선생님들도 찾아낸다”고 말 했다. 외국어 텍스트를 주로 읽으니 번역 결과물이 자연스럽게 쌓였다.

처음엔 이를 무작정 인터넷에 올렸다가 아예 출판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으나, 짧은 논문을 책으로 펴내 겠다는 출판사를 찾기가 힘들었다. 결국 지난해 6월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온라인 콘텐츠 ‘철학백과’(https://plato.stanford.edu) 항목을 논문처럼 번역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페미니즘의 주제 들> 등 ‘스탠퍼드 철학백과의 항목들’ 시리즈 4종을 펴냈다. 서양철학의 세부 주제 연구 성과를 다루는 ‘서양철학의 논문들’ 시리즈 등도 냈다.

앞으로 ‘근대 철학 총서’ 시리즈, 피터 애덤슨 영국 런던킹스칼리지 교수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책으 로 엮은 ‘빈틈없는 철학사’ 시리즈 등도 출간할 계획 이다.





그래도 주된 뼈대는 공부모임이다. ‘재야’의 공부모 임을 다양하게 경험해본 신씨는 채워지지 않는 아쉬 움이 있어서 직접 공부모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늘 ‘이 정도까지만 알면 된다’는 식의, 벽 같은 것이 느껴 지곤 했어요. ‘시민을 위한 철학’이라고 해서 ‘이 정도’ 에 그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수준으로 파고들 수 있 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철학, 페미니즘, 도덕심리학, 의학철학 등 좀더 전문적인 영역들을 파고든다거나, 근대 철학의 다양 한 논쟁 지점을 소개하는 스탠퍼드 철학백과를 주요 교재로 삼은 것 등도 이 때문이다.

전기가오리는 ‘교육 서비스’ 활동을 공부모임이나 출판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대표적인 것이 ‘왜 이렇게 안 끝나는 세미나’라는 제목의 오프라인 해설 모임이다. 출간한 텍스트 가운데 난도가 제법 있는 것들을 골라 내용을 풀이한다.

지난 5일부터는 매주 ‘민망하지만 드릴 말씀이’란 제목의 온라인 해설 방송도 시작했다. 트위터의 라이 브 방송 기능 ‘페리스코프’를 활용한다. “공부모임 참 여자와는 번역 원고를 함께 만들고, 책 구매 독자에 게는 번역서를 제공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후원자에 겐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신씨는 말했다.

현재 공부모임에는 20여명이, 후원자로는 270여명 이 참여하고 있다. 운영자로서 신씨는 “규모를 더욱 키우고 고정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단기 목표라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저술 활동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좋은 선생님들을 찾아서 ‘가르쳐달라’고 청하고 모 셔오는 게 제 일이에요.

제도권 학계, 기존의 연구모임, 단체에서 활동하시 는 분들과도 최대한 ‘협력’하고 싶습니다.” 후원자에 게는 책과 교육 서비스뿐 아니라 “격주로 운영자에게 한 시간을 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혜택”도 준단다.

최원형 기자, <한겨레> 2017-04-11,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