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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44]
​안희정 1심이 나에게 남긴 것들
안희정 1심이 나에게 남긴 것들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8월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기자로서 내 생각과 실제 신문에 쓰는 기사 내용이 충돌하는 일이 종종 있다. 격하게 부딪힌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각이 조금 다르거나 비판의 수위 등을 놓고 ‘좀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정도의 엇갈림이다. 이런 어긋남을 감지하더라도 나는 대체로 소극적인 저항이나 의사표시를 할 뿐 더 나아가지 않는 편이다. 다수의 합의된 의견이, 경험 많은 선배의 통찰이, 때론 관성과 세파에 찌들지 않은 열혈 후배의 의견이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는 걸 나중에 깨닫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판결 이후 2주째 도심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재판이 두번 더 남았으니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더구나 이번 재판은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오랜 세월 외면했던 부조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뒤 새로운 판단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여파로만 따지면 엊그제 2심이 끝난 전직 대통령 재판보다 중요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재판을 보도하면서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한겨레>는 줄곧 ‘미투’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그 연장선에서 안 전 지사의 유죄를 주장하는 취지의 기사를 썼다. 무죄 판결이 난 뒤엔 ‘위력’의 범위를 좁게 해석한 법원을 날 선 어조로 비판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기사를 다루는 중에도 한편으로 ‘정말 그렇게 강력한 위력이 작동했을까’라고 의문을 품었다. 사석에서 만난 이들이 “둘 사이가 틀어져 그런 게 아니냐”고 야유하거나, “시키는 대로 씻었다고? 지금이 조선시대냐?”라고 빈정대는 것도 반박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내 생각과 신문 기사가 충돌한 것도, 엇갈린 것도 아니었고, 그저 홀로 갈팡질팡한 셈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지금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향후 이어질 2심 재판과 뒤따르는 토론 과정에서 아래 두 가지 정도는 내내 곱씹으며 고민해보려 한다.

첫째는 위력이 존재했던 그 공간의 작동방식이다.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김무성 의원의 공항 ‘노룩 패스’ 장면이 상징적이다. 나도 한동안 정치부 기자로 그 언저리를 맴돌며 ‘공과 사가 뒤섞여 한 몸처럼’ 위계가 작동하는 걸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힘센 대선 후보에게 주어지는 ‘어마무시한’ 위력이 주변 사람들을 침묵하게 하고, 그 결과 대통령과 정부가 파멸까지 간 사례를 국민들도 모두 지켜봤다. 재벌과 대학, 군·검찰·경찰 등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남은 곳이 아직 많으니, 안 전 지사 사건이 별난 집단에서 벌어진 별난 사례가 아닐 수 있다.

둘째는, 미투 이후 여성들이 왜 그토록 분노하는지, 가까이는 우리 부서 후배 여성 기자들이 왜 한목소리로 안 전 지사에게 분노하는지에 관해서다. 그들을 믿고 지금껏 썼던 기사가 훗날 옳은 선택으로 판가름날 거라는 믿음을 갖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출간 30년을 맞은 고 신영복 선생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여성들의 분노는 결국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그래서 피해자가 겪은 일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자기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일 것이다. 내가 1심 내내 갈팡질팡했던 건 ‘입장의 동일함’은커녕 ‘관찰’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애정’과 ‘연대’의 관계로 발전하려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보려 한다. 

석진환 사회1 에디터, <한겨레> 2018-08-26,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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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국가는 없다”…‘안희정 무죄’ 분노 2만명 참가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지난 8월18일 오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폭염이 한풀 꺾였지만 기온이 30도를 웃돌던 18일 오후 5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안희정은 유죄다, 사법부도 유죄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성범죄자 비호하는 사법부도 공범이다” “피해자 옆에 우리가 있다” 구호가 퍼졌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더위에 맞선 여성들은 집회 시작 전인 오후 4시30분께부터 모이기 시작해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를 채웠다. 애초 1차선에 앉았던 참가자들은 여성학자 권김현영씨가 무대에 올라 “재판정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우리의 자리는 여기밖에 없다”며 “우리는 조각나서 구석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참가자들은 경찰의 폴리스 라인을 3차로로 스스로 밀고 열었다. 오후 5시반께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대문역으로 향하는 4차선 도로중 3차선을 가득 메웠다. 집회 참가자들은 점점 늘어 주최쪽 추산 약 2만명 가량 모였다. 앞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2주기였던 지난 5월 4차 끝장집회에선 2000명이 모였다. 지난 14일 법원이 정무비서 김지은(33)씨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후 여성들의 분노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 말하기인 ‘#미투’ 이후 네차례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열었던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18일 오후 5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는 주제로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원래 한주 뒤인 25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 이후 앞당겨졌다. 

김씨는 이날 집회에서 자신의 입장을 편지로 보냈다. 김씨는 “살아 내겠다고 했지만 건강이 온전치 못하다. 8월14일(선고일) 이후에는 여러차례 슬픔과 분노에 휩쓸렸다”며 “‘죽어야 제대로 된 미투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안 전 지사의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를 향해 “저는 경찰과 법원의 집요한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했다. 그런데 안희정에게는 왜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는지 묻지 않았나, 왜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면서 제 이야기는 듣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이어 김씨는 계속 투쟁할 뜻을 보이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씨는 “여러분이 권력자와 상사에게 받는 그 위력과 폭력은 제가 당한 것과 같다”며 “제발 함께 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씨의 입장문은 김씨를 변호하고 있는 정혜선 변호사가 대독했다. 

안 전지사의 무죄 판결은 여러모로 여성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7살짜리 딸과 함께 집회장소를 찾은 김민지(39)씨는 “딸도 우리가 성인으로서 겪었던 성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될까봐 걱정돼서 집회에 참석했다”며 “사법부가 안 전지사가 위력이 행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부분에서 많은 불만을 느낀다. 여성인권은 무시되는 것 같아 딸과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50대인 엄마가 함께 집회에 가자고 권유해서 엄마와 친구와 함께 온 엄아무개(22)씨는 “합의한 관계는 잘못이라고 밝힌 안 전지사가 무죄가 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엄씨와 함께 집회 장소를 찾은 이아무개(22)씨는 “양예원씨가 공포 때문에 사진 촬영에 응했다는 건 여성들은 이해할 것”이라며 “김지은씨가 안 전지사의 위력에 눌렸다는 걸 왜 사법부는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안 전지사의 무죄’ 선고는 그동안 페미니즘 집회에 소극적이었던 여성들도 목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미투 집회에 처음 참석한 장아무개(22)씨는 “소극적인 성격인데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돼 그동안 여성 관련 집회에 참가하지 못했다”며 “안 전 지사의 무죄선고를 계기로 더이상 남 눈치 안보고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학교에서도 선배, 또는 남자인 친구들이 완곡한 어조로 말하는 강요 때문에 성폭력을 강요당한 경험이 있다. 김지은씨를 이해한다”며 “강요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김지은씨의 대처를 사법부가 동의로 해석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장씨는 혜화역 시위 등 여성 인권 집회에 계속 참여할 뜻을 밝혔다. 

친구들과 함께 온 성아무개(28)씨도 “여성집회에 참여한 적이 없었지만 무죄 선고에 분노를 느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판결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지지하고 있다고, 연대하고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

장수경 기자, <한겨레> 2018-08-18,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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