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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05]
탈원전이 뉴노멀이 되려면





탈원전의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반소비세 (부가가치세) 도입의 역사가 겹쳤다. 한 사회 구성 원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이나 가치, 인식을 바꾸 는 일이 녹록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돼서다. 이젠 상품이나 서비스를 살 때 붙는 부가가치세에 시비 를 거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새로운 표준’이 되기까지 순탄한 길을 걸어온 건 아니다. 그 전까지의 소비세는 기껏해야 담배·술, 사치품, 일부 공산품 거래를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거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로 확대하는 건 국민 부담 증 가와 직결되는지라 거센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그 중에서 세금 부담 능력이 떨어지는 저소득층의 불 만이 가장 컸다. 아이디어가 탄생한 지 40년 뒤인 1954년에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것도 그 런 이유다. 그러나 이 세금은 130여 나라에 도입됐 다. 스웨덴의 사례는 부가가치세 도입을 둘러싼 저 항과 설득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30년 대 복지국가의 토대를 마련한 스웨덴은 20여년이 지나면서 재정 수요가 급증했다.

소득세 인상만으 로는 복지지출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사민당 정 부는 부가가치세로 눈을 돌렸다. 당시 재무부 장 관이었던 군나르 스트렝은 ‘일하는 사람을 위한 복지국가’가 지속되려면 노동자들이 세금을 더 내 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노동조합의 반발에 부닥쳤다. 세금이 부족 하면 부자들 호주머니를 털 일이지 왜 ‘서민 증세’ 를 하느냐는 논리였다. 보수정당은 세금을 쉽게 걷으려는 꼼수이자 늘어난 세수로 복지를 확대하 려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여론조사 결과 역 시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스트렝은 소신을 꺾지 않았다. ‘소비는 부자가 더 많이 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보다 세금을 더내게 된다’ ‘당장은 저소득층의 부담이 늘겠지만 걷힌 세금을 저소득층한테 더 쓰면 결과적으로 유리하다’는 논리를 댔다.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 하는 자료를 만들어 캠페인을 벌이고 본인이 직접 지역 정당 행사나 노동조합 모임에 참석해 도입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더디지만 끈질긴 5년여간의 설득 끝에 충분한 지지자를 확보했고 1959년 법 안을 통과시켰다. 스웨덴은 그렇게 늘어난 세수로 가난한 이들이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주택, 교 육, 건강 관련 서비스를 값싸게 제공했다. 도입 당 시 4.9%였던 세율은 이제 25%에 이른다.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재개’를 택한 공론화위 원회 시민참여단의 결정은,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가치관의 재설정’이 우호적인 정치 환경이나 구호 의 선명함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 시 민참여단은 “재개 입장이 우세했던 것은 중단 쪽 에서 피부에 와닿지 않는 데이터를 계속 보여줬 고, 뚜렷한 대안 없이 신재생에너지가 만능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해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 거 같다.

또 재개 쪽은 생업이 걸린 문제라 절박한 데, 중단 쪽은 상대적으로 준비를 덜 한 것 같다” 고 했다. 스트렝의 부가가치세처럼 변화가 가져올 삶과 생활의 긍정적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또 주목할 부분은 시민참여단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많아지고, 토론이 이어질수록 ‘중단’과 ‘재개’의 격 차가 벌어진 사실이다. ‘끝장 토론’에서 토론자의 준비 미숙이 드러나듯 숙의 과정에서 탈원전 담 론의 미숙함과 부실함이 노출된 것일 수 있다. “희망은 진보의 연료”라고 했던 영국 노동당 토 니 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처음엔 무시당하던” 탈 원전 주장은 이제 “미쳤거나 위험하다”는 비판을 막 넘어섰다. 탈원전 지지자들이 주류 담론을 극 복할 설득력 있는 대항 논리를 완성해야 “더는 이 의를 다는 사람이 없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이재명 디지털 에디터,
<한겨레> 2017-11-06,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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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학습 할수록 ‘탈핵’ 원전 확대정책에 ‘옐로카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시 민참여단 471명이 정부의 오래된 원전 진흥 정책에 ‘옐로카드’를 들었다. 참여단 가운데 9.7%만이 원전 확대 의견을 냈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참여단이 숙의한 쟁점은 신고리 5·6호기 건설비, 신고리 5·6호기가 지어지는 부산·울산의 다수호기 밀집에 따른 안전 문제만이 아니었다. 참여단은 신고리 5·6호기의 ‘필요성’과 ‘경제성’을 제대로 따 지기 위해서 한국의 전력수급 현황과 전기요금 문제, 원전 산 업 전체가 뒤섞인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했다. 참여단은 2차 조사(9월16일) 때는 숙의자료집에 기초한 8 개 질문 가운데 평균 2.8개를 맞혔지만 3차 조사 때는 4.8개, 4차 조사 때는 6.0개를 맞혔다. 정책 이해도를 높인 시민참여 단 471명의 권고는 ‘권한’이라는 법과 제도적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참여단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할지 영구 중단할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판 단하기 위해 시민참여단에게 제공된 숙의자료집과 이러닝 동 영상 강의 등에는 전력수급 문제와 전기요금, 원전과 액화천 연가스(LNG),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에너지산업 전반의 내 용이 폭넓게 담겼다.

이 내용들은 환경단체뿐 아니라 재개 찬 성 쪽에서도 제공했다. 이렇게 한달여간 숙의 과정을 진행한 결과, 10월13일부터 15일까지의 합숙 뒤 이뤄진 4번째 최종 조사에서 참여단 가 운데 원전 축소를 선택한 비율은 53.2%로 절반을 넘었다. 건 설 재개를 결정한 비율 59.5%과 비등하다. 참여단 가운데 원 전 유지는 35.5%였고, 확대는 9.7%에 그쳤다. 재개 쪽 참여 단 가운데 원전 확대 의견을 낸 사람도 16.3%에 그쳤다. (…)

재개 쪽 참여단 가운데 원전 축소는 32.2%였으며 유지 는 50.7%였다는 점도 짚어볼 만하다. 신고리 5·6호기를 건 설하면서 현재의 원전 발전 비중을 유지하려면 가동 중인 원 전 가운데 최소한 2~3기는 멈춰야 한다. 원전 축소 의견은 종 합토론 뒤 크게 늘어났다.

2박3일간의 종합토론에서는 에너 지 정책 전반에 더해 원전의 사회적 수용성 문제까지 다뤄졌 다. 합숙 마지막날인 15일 이뤄진 4차 조사에서 원전 축소 의 견은 53.2%로 3차 조사보다 7.3%포인트나 커졌다. 1차에선 45.6%였고 2차에선 45.9%였다. 최종 조사에서 시민참여단의 판단을 단순히 재개와 중단의 입장 비중을 넘어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시민참여단이 의 사 결정을 하기까지 고려한 원전 관련 6개 항목의 순위와 참 여단이 각 항목에 부여한 중요도를 살펴보면, 신고리 5·6호 기 공사 재개 여부 결정은 곧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숙고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시민참여단은 위원회가 제시한 항목 가운데 안전성(6.7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전기요금 (5.7점)은 가장 후순위로 꼽았다. 공론화위 활동기간 동안 공 사 재개 쪽에선 탈원전으로 전기요금이 폭등할 것이란 주장을 쏟아냈지만, 참여단에게는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최하얀 기자, <한겨레> 2017-10-21,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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