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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의 컨트롤타워는 부모가 아닌 아이 자신
문샘과 함께 '자기방어훈련'

지인이 나에게 고백해 왔다. 폭력이 가해자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데도, 딸에게만 일찍 다니라고 하게 되더란다.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이어폰 쓰지 말고 다녀라’에서 ‘조신한 옷차림을 해라’를 거쳐 결국은 ‘일찍 다녀라’라고 하고 보니 이것이 딸에게 다른 형태의 억압이 되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된다고 하였다. 그렇게 듣기 싫은 말이었는데 제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오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밤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정적인 우리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과, 그렇게 해서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원인이 되는 마음과 그에 따른 행동은 명백히 구별되는 단계를 거친다. 걱정하는 마음에서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 현실을 읽었으니 걱정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래서 어떤 대비를 했는지, 누구를 통제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이 여성을 무기력한 존재로 보는 사회의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데도, 10대들이 피해자라는 정체성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면서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공격 행동의 종류를 꼼꼼히 짚어보고 그에 따른 감정인 화, 수치심, 두려움 같은 것들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감정에 뒤따르는 판단과 행동이다.

우선 돌아봐야 할 것들이 있다. 부모, 교사로서 나는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하고 있는지, 공격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것이 왜 어려웠는지, 공동체 안에서의 폭력은 어떻게 다루었으면 좋겠는지, 신체활동 경험이 너무 부족하지는 않은지,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을 강요하지는 않는지, 갈등을 회피하고 있거나, 폭력을 덮어두고 쉬쉬하려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보호자’라는 정체성이 강한 경우라도 그렇다. 비행기 안전 규칙에서는 아이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주기 전, 보호자가 먼저 써야 한다고 한다. 보호자가 공황 상태에 빠지면 아이들이 더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걱정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걱정이 커지면 ‘데리러 가야 하나?’ 싶다. 사는 지역 특성에 따라 데리러 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꽁꽁 싸매는 보호에 매달리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더 무력해지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아기가 청소년을 거쳐 성인이 되면서 물리적인 행동반경은 넓어진다.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외출하던 시간을 지나, 놀이터에서 얼마간 놀다 돌아오는 것, 혼자서 학교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찾아가는 것. 점차 넓어지는 행동반경에서 단 한 방울의 비에 젖지 않도록 하는 영원한 보호자는 없다.

방어의 컨트롤타워는 자기 자신이다. 자기방어의 주도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스스로 자기 안에 있는 힘을 발견하고 따로 또 같이 그 힘을 키우는 동안 상황을 보는 안목이 높아지고, 지식과 몸짓이 풍요로워진다. 성폭력,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도움을 요청했을 때, 비난하지 않고 경청해줄 것이라는, 구체적인 도움의 행동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우선이다.

문미정(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지은이(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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