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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커질까 봐…’ 참는 게 답은 아니다

문샘과 함께 '자기방어훈련'

때로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나는 어떤 감정인지가 헷갈린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도무지 자연스럽지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혼란은 특히 화와 슬픔 앞에서 더 커진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화는 침해에 대한, 슬픔은 상실에 대한 감정반응이다.

그런데 감정에 대해서조차 성별화된 억압이 존재한다. 여성들이 화내는 것을 은밀하고 집요하게 억누르는 사회다. 화가 날 때마다 여자답게, 애교 있게, 부드럽게, 지혜롭게 화내기를 요구한다. 이렇게 되면 화나는 감정이 선명하고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화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이 풍요로울 수 없다. ‘분노를 드러내본 경험이 많지 않다.’ ‘나의 분노를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다.’ 두 조건이 충족되면 분노를 다룰 방법으로 지나치게 단순한 선택지만을 갖게 된다. 참거나 폭발하거나.

폭발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대응이고, 많은 경우 적절하지 못하다. 감정적인 폭발 이후에 감당해야 할 뒷일도 골치가 아프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까봐 두렵다. 그래서 자꾸만 회피하고 싶어진다. 선택지가 두 가지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폭발하지 않기 위해 결국은 참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 잦다.

“일이 커질까 봐.” 일이 커질까 봐 참아왔던 많은 일들은 실은 커져야 하는 일들이었다. 참아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일이 ‘커지는’ 크기에 대해 오직 폭발과 끝장, 이른바 ‘너 죽고 나 죽고’ 식의 해결책밖에 상상할 것이 없다면 많은 사람들은 없던 일로 묻어두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이 커지면 너도 곤란해지잖아.” 학교에서, 집에서, 어디서든 들어봤음직한 말이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알기 전에…”라는 속삭임이 들려온다. 마치 두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참으라는 말이다. 이것은 분노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분노에 대한 대답은 경청이어야 한다. 더 많은 해결방법을 상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0과 1 사이에 있는, 꺼짐과 켜짐 사이에 있는 셀 수 없이 다양한 크기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참거나 끝장나거나. 이것은 너무 미숙하다. 폭발하지 않으면 듣지 않기 때문에 폭발하는 것이다.

잘 지내던 친구가 스쳐 지나가는 척하면서 가슴을 주무르고 지나갔다. 화가 날 것이다. 지금 당장 그 아이를 돌려세우면 일이 커질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 일은 꼭 크게 만들어야 할 일이다. ‘나만 참으면 돼.’ 이런 생각은 공정하지 않다. 누구도 참아서는 안 된다. 참지 않는다는 것이 곧 폭발과 끝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추행했던 친구를 돌려세우고 어떻게 화를 낼 것인가? 친구들이, 부모님이, 선생님들이 억지로 끼워 맞춰가며 나의 분노를 잠재우려 하지만 않는다면, 이제 0과 1 사이에 있는 분노의 크기를 보아야 할 때다.
화는 딸깍 켜지고 꺼지는 스위치가 아니라 꺼짐과 켜짐 사이에 있는 다이얼이다. 화가 났다면 정확하게 그 대상을 바라보면서 다이얼을 돌려야 한다.


문미정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지은이(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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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43629.html#csidx1aec05f560077478a5d196faf2daf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