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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벽지 근무하는 ‘여교사’가 문제?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사건에 대한 용감한 폭로를 접하며 전남 신안에서 아버지들이 교사를 성폭행했던 사건을 떠올렸다. 그 일이 벌어졌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서울로 오길 잘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닌 교대는 신안처럼 이른바 ‘도서 벽지’가 많은 지역에 속해 있었다. ‘도서 벽지 근무’란 인구가 적고 편의시설이 적은 곳에 세워진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월셋집을 구하기 어려워 학교 근처에 있는 ‘관사’에서 생활해야 하고 동료 교사의 수가 적어 의지하거나 일을 배울 사람도 별로 없다.


이 정도 어려움은 모든 교대생들이 공유하는 것이었지만 여자들 사이에서만 도는 소문도 있었다. 도서 벽지 발령을 받은 선배가 있는데 근처에 연고도 없는 상황이라 밤마다 이장 아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더라. 마을 주민들이 주변 모든 총각들이랑 젊은 여교사를 엮으려고 난리를 친다더라. 아마 어느 직업에나 비슷한 소문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여성에게만 공유되는 성폭행의 기억들을 ‘괴담’이나 ‘소문’으로 깎아내리고 공적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기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숨었고 가해자들은 자신의 교사 부인이 그렇게 얻은 사람이라며 새롭게 찾아온 젊은 여교사들에게 태연하게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나는 미투운동에 나선 용감한 여성들처럼 국가에 여성의 말을 제대로 듣고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서울로 가서 시험을 봤다. 서울은 임용 합격 커트라인이 높은 지역이다. 내가 다니는 교대가 속한 지역에서 임용고시를 볼 때만 지역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고, 1점보다 적은 점수로도 임용 여부가 갈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마다 임용 인원이 발표되는 때가 되면 욕을 먹었다. 서울은 여교사가 너무 많아서 남학생 롤 모델이 없다더라. 여자들은 왜 지역 교대를 나왔으면서 서울로 갈 생각만 하냐. 서울 임용 인원이 적으면 이기적으로 굴지 말고 지방으로 가면 될 거 아니냐. 어느 지역, 어느 사람과 일할지를 여성에게 생존의 문제로 만들어놓고 여성이 하는 선택을 이기적이라며 탓했다.


이후의 사태는 더욱 참담했다. 나라는 여교사를 보호하겠다며 도서 벽지에는 남교사만 배치하겠다는 어이없는 발표를 했다. 도서 벽지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승진 가산점을 받는다. 성과를 측정하기 힘든 교육의 특성상 도서 벽지 가산점은 승진에 필수적이다. 안전을 이유로 여성의 기회를 빼앗고 오히려 그것이 여성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수행 비서가 여성인 게, 도서 벽지에서 여성이 근무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성폭행을 저지르는 남자가, 그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국가가 문제다. 국민들이 지켜달라는 폭로자분의 호소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이번엔 서울 시험을 결정하던 그때처럼 피하지도,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여성이 아닌 세상이다. #미투(Me Too) #위드유(With You)


서한솔(서울 상천초등학교 교사, 초등성평등연구회 대표)